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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야경> 작품의 비밀! 구성미과 빛 그리고 그의 생애

by 와이즈 우먼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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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대표작품인 <야경> 작품의 비밀인 독특한 구성미와 감각적인 빛 표현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생애도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특히 <야경>은 빛의 예술이라 불리는 사진을 찍는 작가들 사이에서 꼭 감상해야 하는 명화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그림이 주는 빛의 묘미를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 렘브란트의 <야경> 작품의 비밀, 독특한 구성미! 

렘브란트의 <야경>은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림으로, 1642년에 완성된 379.5cm X 453.5cm의 굉장히 큰 대형그림입니다. 원래는 더 큰 그림이었는데 작품이 보관되던 집을 헐면서 그림의 일부를 잘라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하니 그 크기만으로도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특히 해외반출이 금지되어 있어 이 작품을 보려면 반드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국보급 작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찾는 이유는 이 그림만이 갖는 독특한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첫째 비밀은 독특한 구성미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단체 초상화는 여러 사람들이 줄을 맞춰 서있거나 앉아 있는 자세로 얼굴은 대부분 정면이나 약간 비켜선 측면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야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있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각자 돈을 모아 그림을 의뢰했고 등장인물 각각이 잘 묘사되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렘브란트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민병대의 역동적인 모습을 초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을 일렬로 정렬하지 않고 앞, 뒤, 옆으로 불규칙하게 배치하고 앞을 보는 사람, 아래를 보는 사람, 심지어 다른 사람의 팔에 얼굴이 가려진 사람까지 매우 다양한 얼굴을 그렸습니다. 또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앞에서 지휘하는 반닝코크 대위가 보이고 뒤에서 깃발을 흔드는 사람, 오른쪽에서 북을 치는 사람, 양쪽에서 창과 칼을 들고 걸어 나오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인물 한 명 한 명의 행동이 매우 개성 있고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며 사람들이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역동성에 있습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개성 있는 얼굴과 행동 묘사, 과감한 구성의 변화를 통해 불규칙함 속에서 최고의 조화로움을 표현하며 그룹 초상화의 새 지평을 열어 지금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작품의 두 번째 비밀, 감각적 빛!

<야경>의 두 번째 비밀은 감각적 빛 표현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야경' 즉 '야간 경찰'이라는 뜻으로 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밤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제목은 그림이 완성되고도 100여 년이 지난 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실제 그림의 배경도 낮이라고 합니다. 그럼 왜 이런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을까요? 렘브란트는 그림을 완성한 후 그림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도록 바시니를 발랐는데, 시간이 지나 바시니가 산화되고 안료의 납 성분도 변색되면서 그림이 검게 변해 사람들은 밤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라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복원을 통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원래 모습을 복원하게 되었고 렘브란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림의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빛은 연극 무대에서 핀조명이 주인공을 비추듯 삼각구도로 중앙을 강하게 비추고 있고 거기에는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반닝코크 대위, 그의 부관이 있습니다. 먼저 소녀를 살펴보면 소녀는 허리에 죽은 흰 닭을 매달고 있습니다. 닭의 전체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발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그림 속 닭의 발톱은 민병대를 상징합니다. 즉 소녀는 민병대원이 아니라 승리를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로 렘브란트는 의뢰받지도 않은 가상의 인물을 그리고 빛을 이용해 강조함으로써 승리에 대한 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림 중앙에서 반닝코크 대위와 부관이 전신에 빛을 받으며 서 있는데, 중심에서 좌우로 빛이 퍼져나가는 느낌을 주는  '키아로스쿠로기법'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법은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하는 '키아로'와 어두움을 뜻하는 '오스쿠로'의 합성어로 명암의 대비를 활용하는 기법입니다. 렘브란트는 반닝코크 대위와 부관은 전신을 밝게 표현하고 다른 대원들은 얼굴과 소품 정도만 빛을 받도록 어둡게 표현하는 빛의 대비를 통해 그림에 입체감을 더하고, 절제된 빛 사용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림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빛을 사용하는 능력이 매우 감각적이고 탁월하여 현재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빛의 걸작을 완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걸작은 그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민병대원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돈을 주고 초상화를 의뢰했는데, 어둡게 표현되거나 팔에 얼굴이 가려지는 등 자신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그림이 완성되자 크게 비난했고 점차 그에게 그림을 의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가난하고 힘든 말년을 보내게 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3. 렘브란트의 생애

렘브란트는 1606년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제분사업을 하는 부모님의 9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14살 때 명문대인 레이던 대학교의 철학과에 입학할 만큼 영리했지만 더 이상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유명 화가인 스바넨뷔르흐 수하에 들어가 당시 관심을 보이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3년간 스바넨뷔르흐에게 그림을 배운 렘브란트는 이후 암스테르담으로 옮겨가 피터 라스트만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스승보다 낫다는 평을 받을 만큼  화가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1634년 재력가인 시장의 딸 사스키아와 결혼하며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재력을 갖춘 신흥 부르주아세력이 렘브란트에게 고가의 그림을 의뢰하면서 그는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은 그 시대 최고의 화가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가슴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스키아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 셋을 어린 나이에 모두 잃었고, 그의 나이 36세 때 그의 아내도 한 살 된 막내아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녀가 한 명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그의 마음에는 말로 표현 못할 고통과 공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높은 이율로 큰 집을 사고, 작품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고가의 유명 그림들을 사 모으는 등 자신의 경제 수준보다 과도한 지출을 이어갔습니다. 여기에 <야경> 이후로 작품 의뢰까지 줄어들자 결국 파산신청을 하게 되었고, 외롭고 궁핍한 노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막내아들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일 년 뒤 그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렘브란트의 후기 작품에는 약한 동물이나 거지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하여 애정을 갖고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 밖에 밀려난 그와 그의 작품은 이후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에 의해 재조명되었고, 점차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오늘날 '빛의 화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 외로움, 가난 등 렘브란트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움이 강렬했기 때문에 어두움과 대비되는 빛을 누구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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